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군정 및 교수요목기(1945. 8 ~ 1954. 4)
  이 시기의 교과서는 국정, 검정, 인정도서가 모두 번각본 형태 형식이었으며 판형은 5·7판(국판)이 주종이었고, 더러 4·6판도 혼용되었다. 용지는 지질이 좋지 않은 마분지를 주로 사용했고, 군정청 학무국 발행의 교과서 중 일부만 미군 당국에서 조달한 모조지 또는 갱지류를 썼다. 따라서 수업 시수, 진도 등 교과 학습에 따른 충분한 지도 방침이 서 있지 않았기 때문에, 쪽수 안배도 매우 불규칙한 체제였다.

  한편 교과용도서에서의 조판은 가로짜기 체제를 굳혔고 한글 전용화 편찬이 현실화되었다. 「한글 첫 걸음」은 일러두기에 해당하는 “주의”와 41개과로 되어 있으며, 판형은 국판, 가로쓰기, 쪽수는 50쪽, 본문 지질은 갱지, 활자 4호(20Q), 색도 인쇄 단도, 제책은 호부장이다. 그런데 당시는 갱지조차 모자라서 “선화지”라는 재생지로 쓰지 않을 수 없었으며, 그 종이는 표백을 하지 않아 빛깔이 푸르죽죽하였고, 때로는 그 전 종이의 글자가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였으며, 롤로를 거치지 않아서 종이 두께가 고르지 못하여 얇게 구멍이 난데도 있었다. 교과서의 됨됨이도 아주 빈약하여서 우리나라 교과서 발행의 역사상 그 때처럼 허술한 교과서를 낸 일은 달리 예를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.

  그 때는 신문 용지로 쓰던 갱지가 제일 좋은 종이였고, 선화지라는 재생지를 써서 제대로 읽기조차 힘든 교과서가 많았다.(홍웅선, 1995) 이 시기에 문교부(편수국장)는 조악한 교과서의 범람으로 사회적 물의(지질, 활자, 내용 등)가 있음을 지적하고 개선책 마련에 노력하기도 했다.

  문교부에서는 1949년도 검정규칙을 발표하였는데 ①원고 6부를 제출하되 프린트나 타이프라이트로 인쇄할 것 ②삽화는 사진급 복사로 작성할 것 ③원고를 3월 10일까지 문교당국에 제출할 것이며, 검정 후 1개월 이내에 완전 제본을 납부할 것 ④본 검정시에도 역시 원고 6부를 제출할 것 ⑤검정원고료는 각 책 가격의 20배로 한다.

  이 같은 점으로 보아 본 검정에 합격되면 체제기준에 준해서 조판 제출하게 되어 있다. 6·25사변이 나기 전에 만든 「철수와 바둑이」란 교과서는 미국교과서「come come spot」라는 교과서를 보고 번안적으로 구성한 것이었으며, 이 교과서가 흑백 인쇄에서 유색 인쇄(1학년만)로 산듯하게 그 모습을 바꿔놓았다. 또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을 당시의 교과서는 색도 인쇄에서 다시 흑백으로 환원되었으며, 판형도 국판(5·7판)에서 4·6판으로 축소되고 활자는 작아졌다. 그리고 지질도 저하되었다.